당신의 모든 순간‘(이하 당모순)은 강풀이 내놓은 4번째 순정만화로, 순정물로는 특이하게 ‘좀비’를 소재로 한 만화다.

공포만화? 순정만화!

좀비를 소재로 한 만화인 만큼 공포만화적인 표현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강풀은 그 동안 미스터리 심리 썰렁물(일명 미심썰) 시리즈를 통해서 나름 공포/스릴러 작가로서의 입지도 다져왔는데, 그를 통해 다듬어진 강풀의 만화적 표현이 때때로 오싹한 기분도 들게한다.

당모순 7화 中

하지만, 좀비는 소재일 뿐 당모순은 결국 순정만화다. 주제를 좀비로 인한 공포나 좀비의 발생 원인 또는 해결로 잡지 않고, 등장 인물들의 사연과 감정의 변화로 잡았기 때문이다. 좀비화 때문에 등장인물은 몇 안되는데, 그들을 통해서 사람과 사랑에 대해서 얘기한다.

여기부터는 만화의 주요 내용도 일부 포함하고 있으므로, 아직 만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주의하기 바란다.

사회문제, 그것이 문제

당모순에 나오는 좀비는 사실 우리가 익숙히 알던 좀비보다는 ‘치매환자’에 더 가깝다. 인간으로서의 거의 모든것을 잃지만 ‘마지막 기억’이라는 것을 갖고 있다는 점이 그렇고1, 목적이 있다는 점이라던가, 물을 무서워하고 불사가 아니라는 점 등도 그렇다. 작가도 작품 내에서 그것을 의식해서 만든 설정이었음을 암시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어쩌면 치매환자로 인한 사회문제를 염두에 두고 만든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당모순 2화 中

당모순 최종화 中

그 밖에도 주인공의 형이 좀비가 되기 전에 미국소를 먹는다거나, 뇌가 녹는 병이라고 한다거나, 음식에 대한 알러지 때문에 가려먹는걸 두고 ‘좀비 바이러스 면역 체질’이라고 나오는 것에서 갈수록 위험해져가는 먹거리에 대한 문제를 은연중에 드러내기도 한다.

충분히 잘 만든 순정만화

당모순은 크게 2부로 나눠져있다.

1부인 1~15화에서는 좀비의 생태와 관찰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주인공은 좀비를 계속 관찰하면서 그들에 대해서 어느정도 알게 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맞은편 짝사랑녀에 대한 마음도 계속 키워간다.

2부인 16~30화에서는 좀비에 대한 좀 더 깊은, 또는 새로운 사실에 대해서 얘기한다. 주인공의 행동과 둘 사이의 관계도 조금씩 바뀌게 되고, 그러면서 작품의 진짜 주제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작품의 진짜 주제가 뭐냐고? 이 만화는 순정만화다. 다시말해 사람과 사랑에 대한 만화지. 그게 주제 아니겠어? 그런데 그런 만화에 왜 하필이면 이렇게 희한한 소재, 즉 좀비를 썼느냐가 2부에서 드러난다는거지. ‘마지막 기억’말이다.

당모순 25화 中

작가는 이를 통해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더 나아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에 대해서 얘기한다. ‘나의 모든 순간’은 무엇인지, 또 ‘그의 모든 순간’은 무엇일지를 생각케 하면서 말이다. 마치 지금 죽어 좀비가 되더라도 당신을 행복케할 ‘모든 순간’을 위해 살으라고 하는 것 처럼.

사회문제를 담았다거나, 현실성없는 좀비물이라거나 해서 그런지 안좋게 보는 사람도 있긴 하는것 같다만, 여전히 뒤떨어지지 않는 수준으로 잘 마무리 된 좋은 작품이라고 본다.

  1. 엄밀하게는 치매와 다르다. 치매는 최근 기억부터 없어지기 때문이다. 다만, 기존에 좀비라고하면 살아있을때의 인성과 기억이 전혀 남지않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시체’였는데, 당모순의 좀비는 일부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는데서 치매와 비슷하다고 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