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앤솔로지: 거울 나라 이야기’는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소재로 한 두번째 앨리스 앤솔로지다.

표지

‘푸딩 살해 재판’은 앨리스의 세계가 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를 흥미롭게 담았다. 추리 요소도 간단하지만 적절해서 꽤나 보는 맛이 있다. 한바탕의 소동같았던 일을 앨리스의 이야기로 연결하는 것도 좋다.

‘로리나와 종말 축하 유랑단’은 앨리스 외적인 요소를 사용한 것으로, 새로우면서도 꽤나 앨리스적인 이야기를 잘 만들어냈다. 단순하기는 하나, 퍼즐 요소도 나쁘지 않다. 저자는 후기에서 주석을 잔뜩 달아 무거운 소설이 되어버렸다고 했지만, 오히려 쉽게 이해하며 읽을 수 있게 하기에 가볍게 만들어준 것 아닌가 싶다.

‘앨리스 아이덴티티’는 보통 ‘앨리스’하면 떠올리는 심상과 원작의 요소들을 이용한 것으로, 디스토피아적으로 보이는 세계가 나름 볼만하다. 유니콘을 쫓는 단장과 극단원들의 이야기도 잘 읽히는데, 욕망과 억압, 해방같은 것들은 익숙하기도 하고 또렷하게 그려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다만, 유전적 형질을 거론하는 SF적인 부분과 완전 판타지적인 부분이 서로 잘 섞이지 않으며, 마지막 문장도 좀 뜬금없다. 범성애적인 걸 담으려는 이야기였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그것 역시 잘 드러나진 않는다.

첫번째 앤솔로지에 이어 후속편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소재로 하고 있다지만, 첫번째 앤솔로지처럼 이 두번째 앤솔로지 역시 딱히 명확하게 ‘거울 나라의 앨리스’로만 소재를 한정하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사용한 소재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 좀 헷갈릴 수도 있을 듯하다.

앨리스 시리즈를 굳이 엄격하게 둘로 나누면 오히려 상상의 폭이 좁아진다. 후대의 앨리스 2차 창작물들이 둘에 나온 요소를 자연스럽게 하나처럼 섞어 쓰는 것도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이 앤솔로지도 그냥 앨리스 시리즈를 소재로 한 1권짜리로 구성했으면 쓸데없이 따질 것 없어 더 좋았을 것 같다. 다만 고블이 얇은 책을 지향하다보니 그걸 굳이 반씩 나눠서 낸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부제는 사실상 제대로 된 의미를 갖진 못한다. 그냥 1권, 2권 같은 표기로 보고 신경쓰지 않는게 낫다.

이 리뷰는 북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