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다 에이지(内田 英治)’의 ‘미드나잇 스완(ミッドナイトスワン; Midnight Swan)’은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소설은 주요 인물들이 성소수자라는 점을 통해 자연스레 그들이 처한 현실과 사회의 인식과 같은 문제들을 얘기하기도 하고, 외면받고 인정받지 못할 뿐 아니라 부정당함으로써 겪게되는 심적인 문제라든가 가족간의 틀어진 관계 등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여러 등장인물들이 엮여 만들어지는 비극적인 드라마를 꽤 잘 보여준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은 역시 주인공인 ‘나기사’다. 그의 고난한 삶은 일본 성소수자의 현실을 꽤나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일본은 성진국이라는 별명처럼 성적인 것도 꽤 잘 양지화되어있고, 소위 뉴하프 등을 공공연히 얘기하기도 하는 등 성정체성 문제에도 포용적인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가 있었는데, 그것들은 그저 잘 만들어진 상업적 판타지에 불과했다는 것 같아 새삼 씁쓸해지게 만들기도 한다.
뉴하프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놀림을 받는다는 식의 단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종합적으로 힘들고 어려울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잘 담아내서 인물의 서사와 감정에도 쉽게 이입할 수 있다.
등장인물도 각자가 가진 결핍을 다른 사람들을 통해 채워질 수 있게 괜찮게 구성한 편이다.
인정하려 하지는 않지만 진심으로 엄마가 되고 싶어하는 ‘나기사’, 엄마의 애정과 발레를 필요로 하는 ‘이치카’, 인형처럼 춤을 강요받았지만 그럼에도 가고싶어했던 꿈에 결국은 도달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린’ 등 각각은 도저히 어쩌지 못할 결핍같은 걸 가지고 있고 서로의 존재가 각자의 결핍을 더욱 실감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잘만 맞물린다면 충분히 서로가 그 결핍을 채워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상황이 계속해서 어긋나고 각자의 결핍이 그것을 부정적으로 더욱 부추김으로써 모두가 비극적인 끝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 차마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다만, 그렇게 되는 후반부의 서사가 썩 좋지만은 않은 편이다. 충분히 그럴만한 요소 즉 씨를 갖고 있었다고는 하나, 단지 단계를 밟아나가듯 건조하게 하나씩 꺼내놓기만 할 뿐이라 왜 하필 그때 그렇게까지 해야만(되어야만) 했는지 좀 설득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대충 넘기거나 급작스런 변화를 보이는 것도 있어 더 그렇다.
비극성을 강화하기 위해 좀 무리하게 밀어부친 것은 아닐까. 영화의 시나리오이기도 하다는 걸 생각하면, 이미 결정된 영상 씬을 위해 앞뒤를 좀 끼워맞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엔딩에 썩 납득이 잘 안된다. 소위 ‘일본적 감수성‘이란 게 없어서 그런걸까.
과연 연기와 영상미가 곁들여진 영화는 또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다.